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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대평가) 1사단 정비대대
    1사단 2024. 2. 2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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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사단 정비대대(경기도 파주시)

    장점
    1. 밥이 맛있다.
    2. 편하다.
    3. 비전투부대이다.
    4. 부조리가 없다.
    5. 훈련이 없다.
    단점
    1. 휴가벌기 빡세다.
    2. 근무가 많다.
    3. 부대시설이 안 좋다.
    4. 선임들이 후임들 눈치보는 대대이다.
    5. 언덕이 많다.
     

    이 글은 해당 부대에 복무하고 있는 병사들의 의견을 가지고 종합하여 작성한 것이니,
    그냥 재미있게 보시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사
    미군정이 1946년 1월 15일 창립한 국방경비대는 동년 6월에 조선경비대로 명칭을 바꾸고서 1947년 12월 1일에 3개 여단을 창설하였는데 그중 '제1여단'(서울)이 1949년 5월 12일 '제1사단'으로 승격된 것이 제1보병사단의 시작이다. 초대 여단장은 중국 국부군 및 독립군 출신의 송호성 준장이었다. 그러나 일본군 출신이 군을 장악함에 따라 김구와 가까웠던 송호성 준장이 밀려나고 1948년 2월 5일에는 일본 육사 26기 이응준 대령이 제2대 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1949년 1월 7일에 일본 육사 27기 출신의 김석원 대령이 3대 여단장으로 부임하였고 1949년 5월 12일에 여단이 사단으로 승격됨으로써 여단장 김석원 대령이 그대로 초대 사단장에 취임했다. 같은 해인 1949년 5월에는 11연대가 북한군과 개성에서 5.4 송악산 충돌(육탄10용사) 국지전을 벌이게 된다. 이후 개성등을 포함하는 38선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9년 10월 1일에는 일본 육사 26기 유승렬 대령이 제4대 사단장을 맡았으며, 1950년 4월 22일에는 역시 만주군 간도특설대 출신의 백선엽 대령이 제5대 사단장으로 취임하였다.
    6.25 전쟁 발발 이후에는 개성과 임진강 및 파주에서 방어전을 펼쳤고, 개성에서 방어전을 펼치다가 김포 및 파주로 분산 후퇴한 12연대를 제외하고 11연대 및 13연대, 증원된 5사단 15연대는 한강교 폭파이후 에는 한강을 도하하여 시흥지구방어사령부까지 후퇴하였다. 비록 한강도하철수 당시 변변한 도하장비가 없어 중화기는 모두 파기한채 시흥지구까지 철수하였지만, 이곳에서 분산된 12연대 및 타 연대병력까지 최대한 수습하고 중화기도 다시 보충받아, 사단 및 연대 건제를 유지한 채 지연전을 벌이며 낙동강까지 철수해 대구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하여 낙동강 전선을 지켰다.
    인천 상륙작전 이후 10월 19일 평양 탈환작전에서 북한군들을 물리치고 평양시에 가장 먼저 입성하는 부대가 되었다. 이때 선봉에 섰던 미1군단에 소속된 부대 중 미 제1기병사단과 미 제24보병사단, 1보병사단 간에 평양 선봉 입성을 위한 경쟁이 붙었다. 1보병사단에는 미군 전차부대가 사단에 배속되어 있었는데, 속도에 맞추기 위해 전차부대는 낮에는 이동하고 밤에는 휴식, 보병부대는 낮이나 밤이나 그냥 걸었다. 당시 미군 전차병들도 '우리는 미군이지만 지금은 1사단이다'라며 협동을 강조했고, 이후 1사단 연대들간 선봉 경쟁이 붙어 동평양(11/12연대)과 본평양(15연대) 전역을 점령한 부대가 되었다. 평양 입성 다음 날인 10월 20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평양 선봉 입성을 기념하여 '계속 전진하여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라'는 의미로 전진이라는 부대 명칭을 내린다.
    참고로 7사단도 부대 역사에 이승만 대통령의 밀명에 따라 18일 오후 평양에 입성한 건 사실이지만 이것은 평양 점령이라기 보다는 평양 강행정찰에 가까운 성격이다. 실제 평양에 선봉 입성한 7사단의 부대는 8연대 9중대 하나뿐이고, 뒤따라 들어온 8연대와 3연대, 그리고 8연대를 얼떨결에 따라와 임시 배속되었던 1사단 15연대 1개 대대는 1사단의 전투지경선을 멋대로 침범해 정당성이 부족했고, 게다가 이 명령을 내린 이승만 대통령조차 1사단만 치켜세웠기에 정식 인정되지 않고 있다. 자세한 건 평양 탈환작전 참고.
    이후 중공군의 개입 이후에도 사단 건제를 유지한 채 후퇴하였다가 다시 북진해서 개전 직후 방어하였던 임진강-파주 지역에 돌아오게 된다. 이 시기 1사단이 겪은 주요 전투로는 중공군 5차 공세의 주공을 저지한 파평산 전투가 있다. 이후 6.25 전쟁이 휴전될 때까지 후방 재편성 및 일부부대 전용을 제외하고는 해당진지를 고수한 채 휴전을 맞는다. 물론 그동안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밀려오는 중공군을 상대로 격전을 벌인 것은 다른 지역과 동일했다.
    6.25 전쟁에서는 미군이 가장 신뢰한 국군 사단으로 유명했다. 그 결과 다부동 전투 이후 미 육군 군단에 배속되어 강력한 포병 및 전차 지원을 받았으며, 정전 때까지 사단 건제를 끝까지 유지한 정예사단으로 평가받았다. 미군이 항상 신뢰하는 유일한 국군 사단이었다. 백선엽 장군이 1년여의 전쟁 전반 기간 동안 사단을 안정적으로 계속 이끌기도 했다. 사단장이 승진과 보직변경으로 물러날 때는 이미 타 사단의 사단장들은 다른 인물로 여러번 교체된 이후였다.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 대표는 2013년 7월 종편 채널A의 시사프로 쾌도난마에 출연하여 정전 60주년 기념특집으로 6.25 전쟁에서 가장 잘 싸운 5대 국군부대를 꼽았는데, 전진부대는 2위로 평가했다. (참고로 신인균의 개인의견일 뿐이다.)

     
    근무환경
    지리적인 조건은 최전방사단 가운데서는 가장 좋은 축에 속한다. 일단 휴전선의 서쪽 끝이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담당지역이 평야와 강을 끼고 있기 때문에 고저차가 크지 않다. 특히 12,15여단의 경우 도라산 외 몇 곳을 빼면 작전구역 내 해발 100미터를 넘는 고지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동부전선 GOP출신 전역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자동으로 장탄식이 나오는 신비의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실 1사단을 지형적으로 편한 사단이라고 부르는데, 엄밀히 말하면 1사단 전 지역이 지형적으로 편한 건 아니다. 12여단 15여단의 경계구역이 임진강과 평야지대기 때문에 생긴 이미지다. 11여단의 경우 담당 경계구역의 상당부분이 산악지대로 이뤄져 있으며 물자 보급을 케이블카로 받아야만 하는 소초들도 있다. 더불어 1사단 내에서는 가장 추운 곳 중 하나. 임진강과 서해안이 가까워 겨울에 강바람이 무척 강하게 부는 편이다.
    서울에서 매우 가깝기도 한데, 사단 위수지역 내로 서울 소속 버스와 서울로 가는 전철이 둘 다 들어오는 유일한 최전방사단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 거주하는 경우에도 굉장히 출타여건이 좋다. 오히려 후방에 애매한 지역에 갈 바에야 여기로 오는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위수지역이 2011년까지는 파주시 시내, 그중에서도 금촌역까지가 대부분이었으나, 2012년에 하창호 사단장이 부임한 이후 상급부대인 제1군단과의 협의를 통해 1사단 전 부대의 위수지역을 고양시까지 확장하였다. 이에 따라 일산신도시까지 합법적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서울특별시계와 한강을 건너지 않으면 가능하다. 현재는 출타제한범위가 해제되어 2시간 이내 복귀 가능한 지역은 어디든 갈 수 있다. 교통편이 잘되어있는 편이라 서울, 수도권 동부권 정도빼고는 어지간한 곳은 다 갈 수 있다.
    여름철에는 파주의 유명한 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클로로퀸이라는 아주 독성이 강한 말라리아 약을 먹어야 한다. 약의 부작용이 심한 사람은 차라리 말라리아에 걸릴 각오로 약을 버리기도 하지만 말라리아가 잘 걸리는 지역이다보니 간간히 말라리아에 걸려서 실려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거기다 말라리아의 경우 잠복기간이 6개월~1년이 넘기도 하므로 전역후 발병하는 재수없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헌혈의 집에서도 이쪽에서 복무했던 사람을 잘 안받아준다. 이곳은 들쥐로 인해 전염되는 제2종법정전염병인 유행성 출혈열로 유명하다. 한탄바이러스의 한탄강이 이곳 관할이다.
    임진강 하류를 넓게 끼고 있다 보니 GOP 경계와 동시에 강안 경계도 맡고 있다. 실제로 95년 임진강 벼락바위 일대에서 임진강 하류로 침투하는 간첩을 격멸한 벼락바위사건도 있다. 사단가에도 언급되듯이 제3땅굴 발견 등과 함께 부대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게다가 이 부대는 전방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거점인 관계로 완벽한 진급코스이다. 그래서 장교라면 이 부대에서 한 번 이상은 복무해야 장성까지 무난하다. 이 부대에서 복무했던 장교 중 예비역 대장들이 상당히 많은 것은 괜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병들 역시 1사단의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메이커 사단임에도 불구하고 선호한다.
                                                                                                                                                                              출처: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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