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부대평가) 3사단 22여단 혜산진 여단본부
    3사단 2024. 8. 5. 01:04
    728x90
    반응형

    3사단 22여단 혜산진 여단본부(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장점
    1. 훈련의 강도가 빡세지 않다.
    2. 부대시설이 좋다.
    3. 훈련이 많이 없다.
    4. 백골중에서 그나마 낮다.
    5. 출타시 부대에서 차량지원을 해준다.
    단점
    1. 휴가가 없다.
    2. 밥이 맛이 없다.
    3. 편의시설이 열악하다.
    4. 부조리가 있다.
    5. 겨울철에 보일러가 자주 고장난다.
     

    이 글은 해당 부대에 복무하고 있는 병사들의 의견을 가지고 종합하여 작성한 것이니,
    그냥 재미있게 보시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사
    1947년 12월 1일 부산광역시에서 제5, 6, 9연대와 이응준 대령을 초대 여단장으로, 조선경비대 '제3보병여단'으로 창설되었으며, 이후 1949년 5월 12일 최덕신 대령을 초대 사단장으로 하여 '제3보병사단'으로 승격되었다.
    별개로, 해당 사단의 핵심 부대인 18연대(진백골연대)는 3여단 창설에 맞춰 3여단 내에서 창설되기도 했으며, 자원입대한 서북청년회 회원들이 중심이 된 부대였다. 따라서 극도의 반공 성향과 전투적 기질을 자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철모 좌우에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고향 땅을 되찾겠다."라는 의미로 백골(白骨) 마크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다만 6.25 전쟁 초기에는 뱅뱅 돌다가 황해도 옹진을 찍고 수도경비사령부에 들어가 수도사단(김석원 준장) 소속이었다. 개전 1개월도 못 되어 엄청난 손실에 부대 건제를 도저히 유지할 수가 없어 7월 24일에 18연대는 재편되어 산하의 1대대로 격하되고, 같은 사령부 내에 있던 3연대는 2대대, 8연대는 3대대가 되는 등 18연대 내부로 포함되며 부대 편제가 1/3로 줄어들었다. 이 모든 게 5, 7, 수경사 3개 사단이 1개 사단으로 통폐합되는 과정에 발생된 일이다. 하지만 3개 연대의 핵심 요원들이 제18연대로 재편되자 이후 막강 연대로 변모하였다. 한때 수도 사단 봉급의 태반을 차지할 정도로 고참 하사관들이 많아 BAR 사수까지 중사, 상사로 짜여 있었다고 한다. 당시 연대장이 임충식(국방부 장관), 부연대장이 한신(합참의장), 3대대장이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다.
    어쨌든 부대 통합으로 18연대에서 서북청년회원의 비중은 확 줄어 들었다. 그래도 '백골부대'라는 명칭은 여전히 사용했는데, 워낙 용맹하다 보니 수도사단의 궂은일은 다 도맡아 하여 스스로 '등골부대', '산골부대'라고 자조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백골부대 놈들은 미국 놈들보다 더 악독하여 사람만 보면 죽인다"고 선전하여 국군을 보면 '백골부대'는 지금 어디쯤에 있냐며 걱정했다고 한다. 또한 국군 포로 중에 백골부대원이 있으면 무조건 총살했다고 한다. 북한군 내 백골 공포증이 얼마나 심했는지 1950년 11월 22일~24일 주을 전투 중에는 너무 치열한 교전에 질린 하사관 한 명이 벌떡 일어나 "이 새끼들아! 백골부대다!"하고 외치며 뚜벅뚜벅 걸어가니 그토록 완강하게 버티던 북괴군이 삽시간이 무너졌다는 일화도 있다.
    이후 흥남 철수작전 기간 중 당시 3사단 26연대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흥남 철수 전 함흥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18연대는 수도사단과 같이 철수하다가 폭설로 길이 막히는 바람에 배편으로 흥남으로 이동, 다시 수도사단과 만날 예정이었고, 3사단 또한 22,23연대가 배편으로, 26연대가 기차편으로 흥남으로 이동, 집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18,22,23연대가 배에 올라있던 그 순간에 흥남철수가 결정되면서, 배에 탄 연대들이 그냥 부산으로 직행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수도사단하고 26연대를 바꾸기로 결정하며, 18연대는 3사단으로 예속 전환되었다.
    전환 직전에는 수도 사단장은 송요찬이고 3사단장은 백남권. 연대장은 임충식 대령으로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비로서 18연대가 22·23연대와 만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백골부대" 명칭으로 더 자주 불리게 되었으며, 이 와중에 3보병사단의 별명은 "사자부대(獅子部隊)" 였는데, 6.25 전쟁 이후 여력이 생기자 보다 전투적인 명칭을 원하는 사단장의 의향에 따라 "백골부대"가 사단의 공식 명칭이 되었고, 18연대 역시 자신들이 원조 백골이라는 의미로 명칭을 진백골로 바꾸었다.
    그리고 본진인 3사단에 대해 살펴 보자면 6.25 전쟁 발발 초창기 진짜 어이없는 일들을 겪어왔다. 서울 지원을 위해 22연대를 서울로 보내어 축차투입되었고 후에 영덕지구에서 3사단을 이끄는 이준식 준장의 혼성 3사단으로 편성되어 한강선 방어 이후 지연작전을 펴게 된다. 3사단의 구성연대인 22,23연대가 건제를 유지한채 유지되고 있음에도 7월 5일부 3사단은 해편되었다가 단 이틀 후인 7월 7일 재건되었다.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서 종전의 유승렬 사단장이 경남관구사령부로 보임되고 이준식 준장이 3사단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1개월간 영덕지구 전투를 훌륭히 이끌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는 시간을 얻는데 큰 공을 세웠다. 8월 9일부로 김석원 준장이 사단장으로 보임하여 포항지구 전투를 훌륭히 이끌고 이후 군관민 전원 철수로 유명한 포항철수작전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하여 특히 '10월 1일' 대한민국 국군 최초로 삼팔선을 돌파해(사단 예하 23연대 10중대) 현재 국군의 날의 유래가 되었다. 이때 3사단장이 참군인으로 이름 높은 이종찬이었다. 이종찬은 1950년 11월 12일에 최석 준장으로 사단장이 취임할 때까지 3사단장직에 있었다. 그러나 1951년 그 유명한 현리 전투에서 부대원 2/3가 전사, 실종당하는 참패를 당하기도 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당시 3사단 사단장이 전장병 외출 및 귀가 통제 조치를 하여 전쟁이 터지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휴전 후에는 1973년 3월 7일 전방에서 군사분계선 푯말 보수 작업을 실시하던 중 인민군 육군 초소에서 총격을 가하자, 사단장 박정인 장군의 지휘로 예하 71포병대대가 도발을 가한 인민군 초소를 제압하고, 부대원들을 구출하는 전과를 거두기도 했다. 3.7 완전작전은 휴전 이후에 전방에서 발생한 30여 건의 북한군 침투에 가장 성공적, 모범적으로 대응한 '완전작전'의 사례로 손꼽힌다. 매년 3월 7일에는 3.7 완전작전 선봉 대대 영내에서 기념 행사를 실시한다.
    현재는 제5군단 예하 사단으로 중부전선 철원 지역에서 제6보병사단과 함께 GOP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아래에는 국군 최초의 기갑여단인 제1기갑여단과 국군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는 제5포병여단이 있으며, 대한민국 육군을 대표하는 메이커 사단이다. 전통적으로 해골을 좋아하는지라, 자체 행사나 내부 구조물, 현판 등에는 무수히 많은 해골을 그려넣고 있다.
    훈련소에서 퇴소하는 이등병들에게 주는 술도 백골주라고 부른다. 해골 모양 잔에 술을 담아서 백골주였다. 경례 구호도 다른 부대와 달리 "백골!" 이라고 한다. 1972년까지 경례 구호가 "돌격"이었는데, 제25대 박정인 사단장이 '살아 국가에 충성하고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나라를 지키자'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백골"로 변경했다.
    의외로 회관 이름은 삼성회관인데 삼성회관 옆에 영외 PX인 삼성마트가 있다. 진백골연대의 회관 이름이 백골회관이다.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변경되었다.
     

    근무환경
    아무래도 별명도 그렇고, 부대 이미지가 상당히 험악해서인지 갓 입소한 장정들에겐 빡센 부대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306보충대 같은 곳에서 훈련소와 자대를 통보받을 때, "훈련소 3사단, 자대 3사단!" 소리를 들은 장정이 있으면 옆에 같이 있던 다른 장정들이 조롱하는 게 국룰 마냥 여겨진다. 그도 그럴 것이, 306보충대에서 충원하는 병력은 제3야전군사령부 예하 부대들로 배치되었는데, 3사단의 경우 이들 중 가장 빡센 지형 조건에서 주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이커 부대라 군기를 강하게 잡는 데다 무릎과 허리도 많이 망가지고, 복귀하면 훈련 때문에 할 건 또 짜증나게 많고, 부대 전통 때문에 다른 육군 보병사단보다 훨씬 전투적인 자세를 요구하며 그렇다고 내무 생활이 편한 것도 아니다.
    물론 그 빡세다는 지형 조건이라는 것도 과거 제3야전군 예하의 경기도 쪽 사단들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고, 그래 봤자 진짜 강원도 중동부전선의 산악 지대에 비하면 3사단이 선녀로 보이고. 바로 옆 사단인 15사단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완만한 지형이다. 철원이 상당힌 넓은 평야 지대인데 화천과 경계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15사단이 담당하는 섹터가 이 험준한 산악 지형이 시작되는 철원과 화천의 경계에 걸쳐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에는 동부전선보다 더 춥다. 철원이 남한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파가 몰아치는 해에는 철원이 동시베리아보다 더 추운 경우가 많은데 상황실에서 겨울에 새벽 근무 하다가 뉴스의 아침 날씨를 보면 분명 훨씬 북쪽인 블라디보스토크보다 추운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MBC 주말 예능프로그램인 일밤의 병영 체험 예능 코너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의 해군 제2함대 다음 부대로 선정되어 12월 10일부터 5박 6일간 촬영을 하였으며 물론 시기가 시기인 만큼 혹한기 훈련도 실시하였다. 이후 진짜 사나이 300의 부대들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의외로 외출/외박 시 가볼 만한 명승지가 많다. 도피안사, 직탕폭포, 임꺽정 바위 등. 일반인들은 겉으로만 보이는 해골과 관련된 이미지만 보고 빡세다고 생각하지만 철원-포천 지역이 강원도와 경기도 사이에 넓게 펼쳐진 분지 평야 지대다 보니 강원도 산악 지대에 위치한 부대나 원래부터 훈련량이 장난 아닌 기계화부대에 비하면 이미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한 부대에 속한다. 험준하다는 것도 3군 예하의 경기도 쪽 사단들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고, 철원이 15사단이 관할하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3군 관할인지라 주로 경기도 쪽 전방 사단들과 비교해서 그런 듯하다. 같은 강원도 철원 지역의 바로 옆 사단인 15사단에 비하면 훨씬 지형이 평탄하다고 할 수 있다. 15사단이 관할하는 철원과 화천의 경계 지점부터 험준한 산악 지형이 시작된다. 직할대, 18여단, 22여단, 23여단, 포병연대 중 18여단과 22여단은 GOP를 담당하는 부대인데 18여단은 담당 작전 지역 중 일부 구간의 지형이 강원도보다는 상대적으로 편하며 심지어 22여단의 담당 구역 중 절반 정도는 넓찍한 평야 지역이다.
    2011년 때려잡자 김정일 구호가 북으로 유출되면서 한동안 북한이 완전히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당연히 북에선 게거품을 물며 책임자 처벌하라, 괴뢰당국의 호전광들은 광란의 댓가를 치를 것이다! 라고 패악을 부려댔다. 입만 열면 남한 대통령들을 비방하고 서울 불바다에 갖은 협박질을 하는 놈들이 저러니 웃긴 노릇이다.

    출처:나무위키

    728x90
    반응형
Designed by Tistory.